연구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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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국'의 세계상ㅡ일본, 한국, 베트남
미타니 히로시, 이성시, 모모키 시로
번역 : 조호연
이 논문은 "'세계사'의 세계사(「世界史」の世界史)"(아키타 시게루(秋田茂) 외 편, 미네르바 서방(ミネルヴァ書房), 2016)에 실린 논문을 『일본사 속의 「보편」(日本史のなかの「普遍」)』(도쿄대학출판회(東京大學出版會), 2020)에 재수록한 논문이다. 주목할 만한 점은 『일본사 속의 '보편'』이 일본 막말유신사(幕末維新史) 전문으로 하는 미타니 히로시(三谷博)의 약 30년에 이르는 연구 업적을 집대성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주변국'의 세계상―일본·한국·베트남」이 한국 고대사 연구자 이성시(李成市)와 베트남 중·근세사 연구자 모모키 시로(桃木至朗)와의 공저(共著) 논문이라는 사실이다. 공저 논문의 단행본 수록을 저자 또한 '이례(異例)'(p. ⅱ)라고 표현하였다.
이와 같은 이례적인 구성은 저자의 '일본사'에 대한 문제의식과 깊게 맞닿아 있다. 즉 저자는 서론 「일본사로부터 보편을 바라며――메이지유신을 일례로(日本史から普遍を求めて――明治維新を一例として)」에서 해외, 특히 서양인 연구자에게 일본의 연구가 참고되지 않는 경향과 함께, 그 원인으로 "자신을 스스로 일본어 속에 가두어 오"며 "외국인을 경쟁 상대로 생각하지 않는" 풍조를 지적하였다. 그 결과, 영어 저작가(著作家)가 "세계의 일본사 연구의 지적 패권(覇權)"을 잡게 되었다. 이러한 '분단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써 저자가 제시한 것이 '의식적으로 비교를 추구하는 것'이다. "초점을 좁히면 유효한 비교가 가능하게 되며, 일국(一國)만을 바라보아서는 알 수 없는 것이 드러난다." 이를 통해 저자는 일본사에 나타나는 '보편성과 특수성'을 고찰하고자 노력해왔다(pp. 1 - 7).
물론 '보편성과 특수성'은 고등학교에서 '국사(國史)' 과목을 배운 한국인에게 친숙한 단어이지만, 저자가 말하는 '보편성과 특수성'은 자유와 평등과 같은 보편적 가치나 각 시대에 적합한 체제와 사상을 전제하고, 이를 끼워 맞추어 얻어지는 결과가 아니다. 오히려 역사 속에 나타나는 특정한 사상(事象)이나 사상(思想)을 타국 혹은 지역 단위에서 비교·고찰함으로써 알 수 있는 사실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서론에서 저자는, 일본은 물론 세계의 역사학계에서 메이지유신에 관한 연구가 보이지 않는 이유로, 메이지유신이 "근대 서양의 역사적 경험으로부터 만들어진 혁명의 '보편' 모델로부터 일탈한 '특수'한 사건"으로 무시되어 왔기 때문이라고 진단한 뒤, 다양한 방면에서 다른 혁명들과 메이지유신과의 '의식적 비교'를 시도했다(pp. 8 – 21).
「'주변국'의 세계상―일본·한국·베트남」은 비교 대상으로 '세계상(관)'에 초점을 맞춘 논문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특정 시대의 세계관을 비교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일본의 경우, 대부분이 전국시대(戰國時代)를 거쳐 성립한 도쿠가와(德川) 시대의 사서, 예컨대 『본조통감』이나, 『대일본사』, 『어계개언』 등을 중심으로 고찰하였다. 한편 한국의 경우, 고구려(「광개토대왕비」와 「중원고구려비」)와 신라(「진흥왕순수비」), 고려(『삼국사기』『삼국유사』 등), 조선(『동국통감』), 대한제국·식민지 조선까지 시대순으로 정리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베트남의 경우 중국 당나라로부터 독립한 10세기부터 20세기까지의 인식을 '국호(國號)', '신화', '천하관'을 통해 살펴보고 있다. 이는 필자들이 전문으로 하는 시대와 주제의 차이에 따른 것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각 지역의 특징과 사료 상황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이 논문을 더욱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이 논문의 의의는 우리에게 무척이나 친숙한 '한·중·일(韓·中·日)'이 아닌 중국 '주변'(위치적 의미로 )에 위치한 나라 '한·일·월(韓·日·越)'이 세계관(=천하관)과 그 속에서의 자국의 위상을 어떻게 규정했는가를 다양한 사료를 통해 확인한다는 점에 있다. 보통 일본이나 중국 학계에서 동아시아 속 한국의 위치는 중국과 일본 사이 어딘가로 애매하게 규정지어지는 경우가 많았고, 이는 국내 연구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역사 인식이다. 이와 같은 구도 속에 베트남의 위치를 확인하는 행위는 한국의 위치를 확정지을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앞으로의 한국사 연구에 획기적인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중화 제국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서 저자는 "베트남의 위치와 태도는 한반도와 일본 사이에 있었다."(p. 104)라고 주장한다. 이 외에도 수많은 대상을 비교할 수 있다. 한반도에서는 과거 제도가 도입된 이래 주된 출세 경로가 되었지만, 일본에서는 막부에 권력이 집중되고 과거 제도 자체가 도입되지 못했다. 한편 베트남에서는 레(Lê, 黎) 왕조 때부터 본격적으로 과거 시험이 시행되었지만, 무인 출신 찐(Trịnh, 鄭) 씨가 실권을 잡고 왕부(王府)를 개설하였다. 이 과정에서 무인과 환관 역시 주요한 출세 경로가 되었으며, 과거 합격자 또한 차견(差遣)의 형태로 레 왕조의 직함과 왕부의 관직을 겸직했다. 또 모모키 시로는 본문에서 고증학이 베트남에 끼친 영향으로서 옛 강역(疆域)을 비정 하는 근세 베트남 지식인들의 모습을 소개하였는데(p. 130), 정약용(丁若鏞)의 『아방강역고(我邦疆域考)』 등과 비교해보면 한국사에 대한 새로운 이해에 도달할지도 모른다.
위와 같은 관점에서 「'주변국'의 세계상―일본·한국·베트남」은 한국사에 새로운 분석·해석 방법과 연구영역을 제시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논문으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주석1) 미타니 히로시. 1950년생. 도쿄대학 문학박사. 공익재단법인 동양문고 연구부 연구원, 도쿄대학 명예교수. 저서 (일)『메이지유신과 내셔널리즘(明治維新とナショナリズム)』(야마카와 출판사(山川出版社), 2009), (일)『메이지유신을 생각하다(明治維新を考える)』(이와나미 서점(巖波書店), 2012).
주석2) 이성시. 1952년생. 와세다대학 문학박사. 와세다대학 문학 학술연구원 문학부 교수. 저서, (일)『동아시아 문화권의 형성(東アジア文化圈の形成)』(야마카와 출판사(山川出版社), 2000), (한)『투쟁의 장으로서의 고대사』(삼인, 2019), (한)『고대 동아시아의 민족과 국가』(삼인, 2022).
주석3) 모모키 시로. 1955년생. 히로시마대학 문학박사. 오사카대학 명예교수. 저서 (일)『중세 대월국가의 성립과 변용(中世大越國家の成立と變容)』(오사카대학출판회(大阪大學出版會), 2011), (한)『해역아시아사 연구 입문』(민속원, 2012), (일)『시민을 위한 역사학(市民のための歷史學)』(2022, 오사카대학출판회)
첨부파일 : '주변국'의 세계상-일본,한국,베트남.pdf
2023.08.22
2023.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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