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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치상지·흑치준 부자(父子)의 사적과 묘지의 제작배경, 우에다 키헤이나리치카 (植前 喜兵成智)

우에다 키헤이나리치카(植前 喜兵成智)

번역 : 오택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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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치상지(黑齒常之)·흑치준(黑齒俊) 부자(父子)의 사적과 묘지의 제작배경」 에 대하여 

 

번역자: 오택현

 

본 논문은 흑치상지(黑齒常之) 묘지(墓誌)와 열전(列傳)을 비교 검토하고, 그의 아들인 흑 치준(黑齒俊)의 기록도 주목하였다. 이를 통해 묘지(墓誌)와 열전(列傳)의 제작과정과 그것 들이 사료로서 가지는 성격을 분명하게 하고, 그 기록을 정리하고자 한다. 한국사 측면에서 본다면 흑치상지(黑齒常之)는 백제 부흥운동에서 활약했던 장군(將軍)이다. 하지만 중국사 측면에서 본다면 그는 唐의 변경에서 활약했던 번장(藩將)이었다. 흑치상지(黑齒常之)의 업적은 중국정사(中國正史) 열전(列傳) 외에도 생전의 관력(官歷)을 기록했던 묘지(墓誌)와 그의 자식인 흑치준(黑齒俊)의 묘지(墓誌)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1980년대 이후 흑치상지(黑齒常之) 묘지(墓誌)에 관한 연구는 한국과 중국에서 진행되었지만, 다음과 같은 문제 점이 있다. 첫 번째는 낮은 수준의 단계에서 사료를 이해하고 있기에 상세한 사료 비판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 두 번째는 백제에 관련된 일부의 내용만 보았기 때문에 부분적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선학의 당대(唐代) 묘지(墓誌) 연구 성과를 참고해 흑치상지(黑齒常之) 묘지(墓誌), 흑치상지(黑齒常之) 열전(列傳), 흑치준(黑齒俊) 묘지(墓誌) 각 각이 가지고 있는 사료 성격을 검토하고자 한다. 

 

흑치상지(黑齒常之) 묘지(墓誌)에는 당시 무주(武周)시기 정국(政局)과 자식 흑치준(黑齒俊)의 입장 등이 반영되어 있었다. 그 때문 에 윤색(潤色)과 개변(改變)이 이루어지고 있는 부분이 있어 사료 비판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한 부족한 점은 대체로 열전(列傳)의 기록으로 보완할 수 있을 것이다. 또 검토를 통해 흑치상지(黑齒常之) 묘지(墓誌)가 백제사(百濟史) 사료로서 무비판적으로 사용되면 안 된다는 것을 보여줌과 동시에 백제 유민 묘지와 『삼국사기(三國史記)』의 새로운 사료적 가치를 제시하고자 한다. 

 

첨부파일 : 黑齒常之·黑齒俊 父子의 事績과 墓誌의 제작배경, 우에다 키헤이나리치카.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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